어린이 교재시장에 `가베` 열풍
문화일보 기사입력 2003-05-31 10:09 최종수정2003-05-31 10:09
다섯살짜리 딸을 키우는 A(여·32)씨는 얼마전 유치원 학부모 다섯살짜리 딸을 키우는 A(여
·32)씨는 얼마전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은따’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유명한 놀이교재인 ‘은물’을 시키지 않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은물을 않으면 왕따’가 될 정도라는 이야기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독일의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1837년에
창안한 ‘은물(恩物)’은 최근 ‘가베(gabe)’라는 독일 원어 이
름을 딴 교재까지 30여종이 등장, ‘가베 열풍’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최소 50만원 안팎에서 100만원을 훌쩍 넘는 초고가 놀이교
재인 가베에 대해 너도 나도 시키겠다고 나서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 ‘내 자식에게만은 아낌없이 쓴다’는 부모들의
열성 탓이다.
가베의 원조인 프뢰벨 은물의 경우, 81년 처음 출시됐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를 모은 것은 최근 몇년 사이의 일이다. 프뢰벨 마
케팅담당 문희씨는 “99~2001년 은물 회원수가 연간 200%씩 늘었
다”며 “지난해부터 은물을 벤치마킹한 각종 가베류가 30여곳에
서 출시됐다”고 전했다.
프뢰벨의 은물 가격은 주당 6만원 안팎의 교육비를 제외하고 교
재값만 121만원. 68만2000원 상당의 기본 제품만 사도 되지만 대
부분의 엄마들은 ‘준은물’이라는 작업놀이 교재를 추가로 구입
하는 추세다.
급성장하는 가베 시장의 추산 자체가 어렵지만 시장점유율 50%를
웃도는 프뢰벨측은 최소한 500억원대 규모로 분석하고 있다.
문씨는 “프뢰벨 전체 교사 3000여명 가운데 2500명 가량이 은물
을 가르친다”며 “교사 1인이 일주일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50
명의 학생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프뢰벨이 독주하던 은물 시장은 웅진의 ‘가베놀이마을’, 한솔
의 ‘신기한 창의나라 가베’ 등 유아교육업계 거물들과 중소업
체들도 앞다퉈 뛰어들며 더욱 커지고 있다.
육아 포털사이트 해오름(www.haeorum.com)에서는 가베 공동구매
및 특별판매가 인기 코너다. 해오름 이명원실장은 “방문판매 수
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40~50%씩 할인, 50만원 안팎에 판매하
는데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7~8명씩 구입했다”며 “요즘은 불황
탓에 조금 줄었지만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막대기나 구슬 등 여러가지 원목 교구로 이뤄진 가베는 창의력
교육을 목표로 하지만 어떻게 가르치고 활용하느냐가 관건. 방문
판매업체들의 100만원 안팎의 가베는 방문교사가 매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최근에는 강의 없이 교재만 사는 엄마들도 늘
고 있다. 해오름 이실장은 “엄마들이 직접 동영상 가베 강의나
가베 교육가이드를 구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일부 백화점들은 문화센터에서 가베 프로그램을 마련, 이같은
엄마들의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지난 3월 현대홈쇼핑이 40분동안 2억5000만원 어치의 가베를 판
매한 것도 기록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49만8000원이라는 당시
판매가격에 대해 ‘너무 비싼 아이 교재’라는 의견보다 ‘상대
적으로 싼 가격’이라는 엄마들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한국루소
아이넷(www.gabei.com) 등 가입등록비와 월 사용료를 받고 가베
렌털서비스에 나선 업체도 있다.
A씨는 딸을 ‘은따’로 내버려둘 것인지 여부에 대해 심각한 고
민에 빠졌다. 교육에 관해 엄마들의 귀는 무척 얇다는 말이 실감
난다.
하지만 실제 자녀에게 은물을 시키고 있는 A씨의 선배는 “정말
좋은 교사를 만나거나 엄마가 열성적으로 직접 가베 교육에 나서
지 않는다면 비싸기만하고 활용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 결국 선택의 문제. 적어도 A씨 엄마 세대는 유치원 다니는 아
이들에게 100만원짜리 교재를 사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
다.
정혜승기자 hsjeong@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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